비평의 관점으로 탐색하기

게임에 관한 글쓰기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 우리는 ‘비평’을 이야기하기 위해 원론적 의미에서의 비평과 평론에 대해 살펴보고, 게임에서의 비평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실제 게임을 다루는 글들이 어떻게 퍼블리싱되고 있는지, 매체비평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실제 사례들을 폭넓게 접해보고, 이 글들이 전제로 삼고 있는 기반이 어디에 있는지를 함께 분석해보았다.

게임은 문학과 예술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비평의 대상과는 다른 매체이다. 때문에 다른 감상과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게임에 대한 글쓰기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 번째로 리뷰(Reviews)라는 장르가 존재한다. 게임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게임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프리뷰(Previews)는 말 그대로 게임을 먼저 플레이하고 사전에 알려지는 정보 전달자로서의 목적을 지니고 있다. 리뷰는 플레이 경험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라면, 프리뷰는 좀 더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중심을 둔 글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게임에서의 크리틱, 비평이란(Critics) 무엇일까? 그리고 어떤 식으로 게임과 관련된 글쓰기가 이루어져 왔는가?

사실 게임에 대한 ‘진정한’ 비평이 무엇인가를 논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비평을 쓰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리뷰와 프리뷰보다 상대적으로 어렵다. 비평의 대상이 되는 많은 게임은 사회적 이슈를 다루고 있다. 게임이 모사하고 재현한 대상 자체는 인간이자 현실 사회이기 때문이다. 현실과 다르게 가상의 조건에서 구현되는 과정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게임 비평적 글쓰기의 주제와 전개 과정이 될 수 있다. 또한 비평적 글쓰기를 통해 게임이 가진 내적 구성을 분석하고 평가하고 대상의 외연, 게임의 바깥쪽에 존재하는 담론들과 게임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양상들까지 살펴볼 수 있다.

앤터 던 건전(Enter the gungeon), Dodge Roll, 2016

플레이 방식, 세계관, 서사 등 게임이 가진 내적 구성에 관한 글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오버워치의 여성 캐릭터 위도우메이커(좌), 아나(우)

기존의 일반적인 편견을 넘어서는 과정을 통해 나타난 사회적 담론, 양상들이 게임 속에 담겨 있다. 블리자드는 여성 캐릭터가 지닌 성적 대상화, 정치적 다양성의 문제를 반영한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선보였다.

프로스트펑크(Frostpunk), 11 bit studios, 2018

멸망하는 시기에 놓인 도시 건설을 배경으로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했던 가치, 윤리적 문제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게임에 대한 비평적인 칼럼들을 쓰려는 시도들은 초창기 컴퓨터 전문 잡지를 통해 시작되었다. 이후 PC 통신의 등장과 게임 동호회의 활동을 통해, 개인 홈페이지와 블로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이러한 시도는 지속되어 왔다. 더 나아가 오늘날 게임 연구 결과들을 출판한 단행물과 전문 웹진, 시사 매체, 미디어 비평 등을 통해 게임에 대한 글쓰기는 이어져 오고 있다. 사례들을 살펴보며 우리는 계속해서 게임이 대중적인 매체로 다루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초창기 게임 잡지

게임 연구 단행본

게임 글을 생산하는 전문 웹진의 등장

웹진 미디어스에 연재된 이경혁 게임 칼럼니스트의 글

앞서 말한 것처럼, 게임 비평이란 한 가지로 정의 내릴 수 없다. 즉, 게임에 대한 글을 쓰는 것 그 자체가 비평으로 이어져야 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비평적인 시선이다. ‘비평’이라는 한정된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게임 ‘비평적’ 글쓰기가 필요한 것이다. 특히 사회와 게임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바라보고 이를 시도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나 비평의 방법론 구축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질문은 비평의 방법론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이렇게 완성되는 비평의 흐름은 게임을 제작하는 개발자들과의 피드백으로 이어져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게임에 대한 비평적 글쓰기가 게임 문화의 어느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생각하고 쓰였는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