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놀이와 서사_ 박근서, 박재환

게임에 대한 학술적 담론이 형성되던 초기에 ‘내러톨로지 vs 루돌로지 논쟁’은 중요한 논제였다. 이 논제는 본질적으로 게임을 서사로 파악한 머레이나 플레이어의 행위를 중요시했던 올셋의 의견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그러나 게임은 서사 혹은 놀이, 그 어느 하나로 정의 내릴 수 없다. 게임은 두 요소를 하나의 틀 안에 녹여낸 또 다른 형태의 텍스트이다. 이번 강연에서는 루돌로지와 내러톨로지 간의 관계와 그 사례로 2016년 구글 인디게임 페스티벌 최우수상을 받은 나날이스튜디오의 「샐리의 법칙」을 통해 게임의 놀이와 서사 간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살펴보았다.

게임의 본질에 대한 중요한 이론적 논의들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서사인가 혹은 놀이인가 하는 질문이다. 아트게임 렉처스 3회차에서는 게임의 놀이와 서사, 즉 '루돌로지'와 '내러톨로지' 간의 관계를 살펴보고, 게임 <샐리의 법칙>을 통해 ‘놀이’와 ‘서사’ 간의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고찰해보았다.

게임의 본질은 무엇인가? 게임의 본질에 대한 논의는 텍스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문학 연구의 전통에서 비롯된 잘못된 문제제기이다. 대중문화에서 영화의 영향력이 커지고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짐에 따라 문화적 산물을 전형적인 서사적 텍스트의 한 갈래로 보려는 경향이 강화되었다. 특히 게임산업의 초기에 사람들은 게임산업을 ‘영화산업’에 비유하였으며, 둘을 근본적으로 같은 것(흥행산업)이라 생각했다. 이는 영화를 ‘서사물’로 보는 문학적 전통에 따라 ‘게임은 어떤 종류의 이야기인가?’라는 질문으로 연결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위 ‘내러톨로지 vs 루돌로지 논쟁’이 발생했고, 이는 게임에 대한 학술적 담론이 형성되던 초기에 중요한 논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97년 대표적인 서사학자 자넷 머레이(Janet Murray)는 기존의 서사학의 관점에서 게임을 설명하고자 했고, 디지털 서사를 연구한 에스펜 올셋(Espen J. Aarseth)은 플레이어의 행위를 중심으로 게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다.

본질적으로 게임은 서사(내러톨로지)라는 것이 머레이의 입장이었다. 그는 게임이 기존의 선형적 서사와는 다른 상호작용적 내러티브를 갖고 있다고 파악하였다. 또한 게임을 규칙에 의해 어떤 행위를 하는 곳과 이야기가 진행되는 곳으로 구분하여 분석하였다. 즉, 게임은 근본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이며, 중간중간 규칙이 개입해 어떤 행위를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게임의 본질을 '서사'가 아닌 '놀이'에서 찾으려 하는 연구자들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게임의 본성은 그것의 형식 혹은 시스템에 있으며, 게임 경험의 근본은 이들 형식과 플레이어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있다고 바라보았다.

올셋(Aarseth)은 루돌로지스트들의 선도적인 연구자로 <사이버 텍스트(Cyber Text)>에서 기존의 서사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게임의 독특한 스토리텔링 구조를 언급하였다. 그는 게임의 스토리텔링은 주어진 이야기의 소비가 아니라 게임하기를 통해 성취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놀이와 서사의 이중성 모델

이처럼 게임을 그것이 지닌 형식에 초점을 두고 접근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놀이’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놀이를 인간의 본성으로 규정하고 이를 인류 발전의 원동력으로 생각한 하위징하(Huizinga)의 ‘호모 루덴스‘는 게임의 놀이와 서사 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 있어 중요한 통찰을 제공했다.

오늘날 게임산업에서 중심을 이루는 대부분의 게임들, 특히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장르로 여겨지고 있는 RPG, RTS, FPS, Adventure 등에서는 스토리가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하지만 게임에서 스토리가 반드시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다. 우리는 고전 게임 <퐁>, <테트리스>와 같이 내러티브가 존재하지 않는 게임들을 여전히 플레이하고 있다.

게임은 서사이거나 놀이 그 어느 하나로 정의 내릴 수 없다. 게임은 게임이고, 그것은 서사와 놀이의 요소 모두를 하나의 틀 안에 녹여낸 또 다른 형태의 텍스트이다.


2016년 구글 인디게임 페스티벌 최우수상을 받은 <샐리의 법칙>, 나날이스튜디오

퍼즐 장르 인디 게임 <샐리의 법칙>은 위독한 아버지를 만나러 가기 위해 길을 나선 딸의 여정을 그린 게임으로, 게임의 놀이와 서사 간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앞선 강연 후, 실제 예시로 <샐리의 법칙> 속 놀이와 서사와의 관계가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 함께 분석해보았다.

샐리의 법칙(Sally's law)은 모든 일이 막힘없이 잘 풀린다는 현상을 의미한다. 바로 이것이 게임 <샐리의 법칙>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먼저 게임 속 서사성을 살펴보자면, 본 게임은 게임플레이 자체가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딸과 아버지의 각자 다른 내러티브를 전달하고 이에 몰입할 수 있도록 게임플레이 방법을 구사하여 짙은 서사성을 보여주고 있다. 플레이어는 게임의 똑같은 단계를 샐리의 시점과 아버지의 시점으로 반복해서 플레이하며 각각의 시점에 담긴 딸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이야기가 화면 속 텍스트를 통해 제공된다.

이렇게 아빠와 딸의 대비되는 마음을 표현하는 텍스트는 플레이를 하며 이야기에 대한 몰입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더 나아가 게임의 레벨디자인 또한 서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가 진행되어 갈수록, 샐리가 아버지를 향해 가는 여정이 끝나갈수록 퍼즐의 난이도 또한 어려워진다. 또한 이야기가 진행 될 때는 낮은 레벨 디자인을 통해 플레이어들이 쉽게 이야기를 인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렇다면 본 게임 속 놀이성을 부각시키는 장치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서사 외의 유희를 제공하는 기믹(gimmick)이 존재한다. 지루함을 줄이기 위해 각 레벨에 기믹 요소들을 넣거나, 게임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디테일한 요소들 또한 살펴볼 수 있다. 샐리가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서로를 점점 이해하며, 캐릭터의 색채가 살아나고 동글동글한 이미지로 변화한다. 게임에서 사용되는 열쇠도 처음에는 네모모양이었지만 점차 동그라미로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샐리의 법칙>은 게임이 서사를 수용하는 방식이 기존 예술과 다르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루돌로지와 내러톨로지와의 상호작용을 적절하게 구현하여 색다른 플레이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이러한 게임에서의 서사는 전통적인 선형적 서사와 달리 플레이어의 역할이 중요시되고, 결국 '플레이'라는 행위가 전제되어야만 이야기(게임)가 진행된다. 오늘날 게임은 과연 스토리텔링의 매체, 콘텐츠인가 혹은 행위와 수행의 매체인가?

게임은 규칙과 이야기, 놀이와 서사 어느 하나에 배타적으로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들 모두를 아우르는 새로운 콘텐츠로 우리에게 무궁무진한 재미를 선사해주고 있다.

박근서(대구가톨릭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교수)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스펙터클을 통해 이루어지는 문화정치적 과정과 비디오게임의 문화적 의미를 탐구하고 있다. 저서로 『게임과 문화연구』(2008, 공저), 『코미디, 웃음과 행복의 텍스트』(2006), 『유령의 윤리, 또는 사이버스페이스의 윤리적 개입』(2005), 『텔레비전 오락의 문화정치학』(2003, 공저) 등이 있으며, 역서로 『비디오게임』(2008, 공역) 등이 있다.

박재환(나날이스튜디오 대표)

박재환 나날이스튜디오 대표(PD)는 2016년 구글 인디게임페스티벌에서 모바일게임 `샐리의 법칙`으로 최우수개발사로 선정되며, 인디게임계 유망주로 떠올랐다. 2012년 설립된 인디게임 개발사 나날이스튜디오는 샐리의 법칙 이후 최근 글로벌 PC게임 플랫폼 '스팀'을 통해 VR 게임 '후르츠어택VR'를 출시하며 가상현실(VR), 콘솔 게임기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 모더레이터 : 김상우(더플레이 디렉터)

김상우는 게임문화 비평단체 더플레이(THE PLAY)의 대표이자 디렉터로, 사단법인 문화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이며, 독립큐레이터, 게임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이다. 홍익대학교 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요즘에는 매체예술과 매체 문화를 중심으로 특히 디지털 기술이 구축하는 가상현실에 관해 연구한다.